1964년 여름, 일본 도쿄의 긴자. 상인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이 젊은이 수백 명을 체포했다. ‘미유키(みゆき)족’으로 불린 이들의 죄목은 가쿠란(学蘭, 일본식 교복)이 아닌 버튼 다운 옥스퍼드 셔츠, 스키니 타이, 정장 재킷, 치노 팬츠 등을 걸치고 그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는 점. 반드시 전 세계인의 잔치가 돼야 할 올림픽을 앞둔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그들은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불량배처럼 보였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현상의 중심에는 아메리칸 스타일 브랜드 ‘VAN 재킷’을 설립한 이시즈 겐스케(石津謙介)가 있었다. 1978년 파산할 때까지 VAN 재킷은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 뒤 서퍼, 히피, 로커빌리 그리저, 보소족, 다게노코족 등을 위시한 무수한 스타일이 각지에서 등장했다. 일본이 아메리칸 스타일의 또 다른 근거지가 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아메토라: ‘아메리칸 스타일’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
이 책 『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는 일본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을 촉발한 이시즈 겐스케를 시작으로, 아메리칸 스타일이 일본에 어떻게 수입되고, 편집되고, 보존되고, 나아가 역수출돼 아메리칸 스타일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추적한다. 일본 패션의 전설적인 사진집 『테이크 아이비(Take Ivy)』를 통해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이 일본 곳곳에 전파되고, 우연히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를 접한 일러스트레이터 고바야시 야스히코는 ‘헤비듀티’ 붐을 일으켰다. 오늘날 유니클로, 가마쿠라 셔츠, 에비수, 캐피탈, 베이프 등 일본 브랜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이 됐다. 수십 년 동안 옥스퍼드 버튼 다운 셔츠, 청바지, 스웨트셔츠, 페니 로퍼와 스니커즈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을 줄곧 연구한 작은 브랜드들은 이제는 미국보다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 많은 전문가가 최고의 청바지는 이제 일본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하는 지금, 미국은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한 까닭이다. 그것도 더욱 진보한 모습으로. ‘아메리칸 스타일’은 이제 ‘아메토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어 배싱 에이프(A Bathing Ape)’를 다룬 논문으로 노마라이샤워(Noma-Reischauer) 상을 수상한 문화 연구자 W. 데이비드 막스(W. David Marx)는 일본의 패션에 천착해온 까닭이 1990년대 후반 도쿄에서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하기 위해 거리에서 세 시간 동안 기다린 경험 때문이라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앞다투며 티셔츠 한 장을 욕망하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 덕일까? 이 책의 시발점이 된 VAN 재킷에서 일한 직원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저 우연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저자에게 일본 패션의 황금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을 소개했고, 저자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일본 패션의 타임라인을 구축했다. 이 책은 이론적 토대가 탄탄한 학자형 오타쿠가 누구도 열어본 적 없는 보물 상자를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산재한 ‘패션 전설’의 원전
패션 관련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주하는 이는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이 패션에서 입는 행위 이상으로 읽는 행위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패션 전문가를 자임하는 사용자들이 게시한 패션의 뒷이야기는 언제나 높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이 책을 옮긴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은 말한다. “이 책은 근본적인 고민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패션이란 대체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단지 어떤 옷을 입는 것으로 즐거워하고 만족할까. 이런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통해 자신이 입은 옷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오리지널과 재현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즐거움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패션의 즐거움을 읽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입는 행위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일본이 문화를 다루는 고유한 ‘에디터십’을 해독하는 지침서 역할 또한 분명히 수행하고. 한편, 한국어판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은 유 나가바(Yu Nagaba)의 작품이다. 시대별로 일본에서 유행한 스타일이 한데 모인 모습은 건강하게 소용돌이치는 오늘날의 패션을 암시한다.
1964년 여름, 일본 도쿄의 긴자. 상인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이 젊은이 수백 명을 체포했다. ‘미유키(みゆき)족’으로 불린 이들의 죄목은 가쿠란(学蘭, 일본식 교복)이 아닌 버튼 다운 옥스퍼드 셔츠, 스키니 타이, 정장 재킷, 치노 팬츠 등을 걸치고 그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는 점. 반드시 전 세계인의 잔치가 돼야 할 올림픽을 앞둔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그들은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불량배처럼 보였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현상의 중심에는 아메리칸 스타일 브랜드 ‘VAN 재킷’을 설립한 이시즈 겐스케(石津謙介)가 있었다. 1978년 파산할 때까지 VAN 재킷은 일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 뒤 서퍼, 히피, 로커빌리 그리저, 보소족, 다게노코족 등을 위시한 무수한 스타일이 각지에서 등장했다. 일본이 아메리칸 스타일의 또 다른 근거지가 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아메토라: ‘아메리칸 스타일’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
이 책 『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Ametora: How Japan Saved American Style)』는 일본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을 촉발한 이시즈 겐스케를 시작으로, 아메리칸 스타일이 일본에 어떻게 수입되고, 편집되고, 보존되고, 나아가 역수출돼 아메리칸 스타일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추적한다. 일본 패션의 전설적인 사진집 『테이크 아이비(Take Ivy)』를 통해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이 일본 곳곳에 전파되고, 우연히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를 접한 일러스트레이터 고바야시 야스히코는 ‘헤비듀티’ 붐을 일으켰다. 오늘날 유니클로, 가마쿠라 셔츠, 에비수, 캐피탈, 베이프 등 일본 브랜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이 됐다. 수십 년 동안 옥스퍼드 버튼 다운 셔츠, 청바지, 스웨트셔츠, 페니 로퍼와 스니커즈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을 줄곧 연구한 작은 브랜드들은 이제는 미국보다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낸다. 많은 전문가가 최고의 청바지는 이제 일본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하는 지금, 미국은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한 까닭이다. 그것도 더욱 진보한 모습으로. ‘아메리칸 스타일’은 이제 ‘아메토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어 배싱 에이프(A Bathing Ape)’를 다룬 논문으로 노마라이샤워(Noma-Reischauer) 상을 수상한 문화 연구자 W. 데이비드 막스(W. David Marx)는 일본의 패션에 천착해온 까닭이 1990년대 후반 도쿄에서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하기 위해 거리에서 세 시간 동안 기다린 경험 때문이라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앞다투며 티셔츠 한 장을 욕망하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 덕일까? 이 책의 시발점이 된 VAN 재킷에서 일한 직원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저 우연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저자에게 일본 패션의 황금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을 소개했고, 저자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일본 패션의 타임라인을 구축했다. 이 책은 이론적 토대가 탄탄한 학자형 오타쿠가 누구도 열어본 적 없는 보물 상자를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산재한 ‘패션 전설’의 원전
패션 관련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주하는 이는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이 패션에서 입는 행위 이상으로 읽는 행위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패션 전문가를 자임하는 사용자들이 게시한 패션의 뒷이야기는 언제나 높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이 책을 옮긴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은 말한다. “이 책은 근본적인 고민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패션이란 대체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단지 어떤 옷을 입는 것으로 즐거워하고 만족할까. 이런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통해 자신이 입은 옷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오리지널과 재현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즐거움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패션의 즐거움을 읽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입는 행위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일본이 문화를 다루는 고유한 ‘에디터십’을 해독하는 지침서 역할 또한 분명히 수행하고. 한편, 한국어판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은 유 나가바(Yu Nagaba)의 작품이다. 시대별로 일본에서 유행한 스타일이 한데 모인 모습은 건강하게 소용돌이치는 오늘날의 패션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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