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개의 조각 글과 10개의 생활 글 모음집
: 컴퓨터와 외장하드가 바뀔 때마다 삭제되지 않고 살아남는 폴더가 있다. 폴더명은 ‘소설의 조각들’. 그때그때 떠오른 문장이나 장면을 무작위로 써놓는 저장고 같은 곳이다. 문장 수로 따지면 방대한 양이지만, 실제 쓸모 있는 문장은 몇 개 없다. ‘소설의 조각들’만큼 오랜 시간을 따라다닌 다른 폴더는 ‘마감 중 조각들’이다. 자발적인 마감이 아닌 누군가 정해준 마감을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써 나는 언제나 마감 중이었고, 마감 중에 생기는 단편의 일들을 작성해놓은 것이다.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의 모습, 버스 안에서 바라본 거리의 모습, 옥상에 죽어있는 백로의 모습, 옆집 할머니의 친목생활 등등.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변에서 일어나고 없어지는 장면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글 모음이다. 일기를 쓰기에는 번거롭고, 어느 순간은 밀봉된 기억으로 잡아두고 싶을 때 조각 글을 추천한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조각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책속에서
예전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친구의 가방을 닫아주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그 친구같은 사람이다. 16p (정체성)
등산 가방을 멘 아주머니 한 분이 오른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담배를 들었다. 왼손에는 작은 종이컵이 들려있다. 벽을 바라보고서 오른손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들이마신다. 서너 번 반복하고, 왼손에 들린 종이컵에 꽁초와 오른손 비닐장갑을 구겨 넣는다. 도로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544p (골목길에서 주운 이야기)
약물 출동 방지를 위해 현재 복용중인 약이 있냐는 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한약을 먹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복용 이유에 대해 물으셨는데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이라 말했고, 현명한 선생님은 '건강증진용'이라는 멋진 말을 적으셨따. 책을 백날 읽으면 뭐해. 73p (독서의 무용함)
예상하지 못한 허기가 찾아오면 밝게 쓰라던 차장이 생각난다. 그 말이 아직 나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걸 보면 밝은 글을 쓸 팔자는 아닌 것 같고, 묘하게 밝게 살라는 말처럼 들리는 건 자격지심일까. 이런 삶과 저런 삶의 경계에 살고 있다고,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아닌 곳에 사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건 치사하다. 133p (밝게 쓰세요 밝게!)
57개의 조각 글과 10개의 생활 글 모음집
: 컴퓨터와 외장하드가 바뀔 때마다 삭제되지 않고 살아남는 폴더가 있다. 폴더명은 ‘소설의 조각들’. 그때그때 떠오른 문장이나 장면을 무작위로 써놓는 저장고 같은 곳이다. 문장 수로 따지면 방대한 양이지만, 실제 쓸모 있는 문장은 몇 개 없다. ‘소설의 조각들’만큼 오랜 시간을 따라다닌 다른 폴더는 ‘마감 중 조각들’이다. 자발적인 마감이 아닌 누군가 정해준 마감을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써 나는 언제나 마감 중이었고, 마감 중에 생기는 단편의 일들을 작성해놓은 것이다.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의 모습, 버스 안에서 바라본 거리의 모습, 옥상에 죽어있는 백로의 모습, 옆집 할머니의 친목생활 등등.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변에서 일어나고 없어지는 장면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글 모음이다. 일기를 쓰기에는 번거롭고, 어느 순간은 밀봉된 기억으로 잡아두고 싶을 때 조각 글을 추천한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조각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책속에서
예전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친구의 가방을 닫아주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가방이 열린 채 다니는 그 친구같은 사람이다. 16p (정체성)
등산 가방을 멘 아주머니 한 분이 오른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담배를 들었다. 왼손에는 작은 종이컵이 들려있다. 벽을 바라보고서 오른손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들이마신다. 서너 번 반복하고, 왼손에 들린 종이컵에 꽁초와 오른손 비닐장갑을 구겨 넣는다. 도로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544p (골목길에서 주운 이야기)
약물 출동 방지를 위해 현재 복용중인 약이 있냐는 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한약을 먹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복용 이유에 대해 물으셨는데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이라 말했고, 현명한 선생님은 '건강증진용'이라는 멋진 말을 적으셨따. 책을 백날 읽으면 뭐해. 73p (독서의 무용함)
예상하지 못한 허기가 찾아오면 밝게 쓰라던 차장이 생각난다. 그 말이 아직 나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걸 보면 밝은 글을 쓸 팔자는 아닌 것 같고, 묘하게 밝게 살라는 말처럼 들리는 건 자격지심일까. 이런 삶과 저런 삶의 경계에 살고 있다고,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아닌 곳에 사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건 치사하다. 133p (밝게 쓰세요 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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