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으로 하는 말』은 반복되는 어느 일요일에 대한 다섯 편의 연작 소설입니다. 다소 무모한 계획과 변덕맞은 선택 속에 조금씩 달라지는 다섯 번의 하루를 사는 동안 주인공이 듣거나 하게 된 말의 진의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목차
* 괜찮으세요?
* 일부러 그랬겠어
* 팬입니다
* 혹시 저 뮤트하셨어요?
* 가만 있어 봐
책속의 문장
그렇다, 사진. 오늘의 모든 일정은 공통적으로 사진 촬영이 가장 중요하다. 계획대로 누락없이 수행한다면 최소 네 장의 사진을 건져 업데이트가 뜸했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일정인가? 말도 안 돼. 고작 사진 때문에 이걸 다 하겠다고? (p.13)
신은 없다. 아니, 어쩌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한테 왜, 무슨 가르침을 주려고. 태연하지만 조금 빠르게 걸었다. 다시 보니 삼십 초가 알려 준 곳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다들 가까이 하지 않는 곳이었고, 숨어서 이 사태를 처리하기에 제격이었다. (p. 26)
다 할 수도, 필요도 없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제 집에서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던 감자가 나보다 먼저 뛰어가서 싱크대 앞에 앉았다. 빙글빙글 돌다가 그릇을 내려 놓자 사료를 한 알씩 씹어 삼킨다. 너 목욕할 때도 지났는데. 밝을 때 데리고 나가서 산책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감자에 대한 죄책감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기대출금이 십 억 정도라고 쳤을 때, 과연 그는 오십만 원 정도 더 대출 받는 것을 크게 걱정하며 주저할까? 미안하지만 늘 미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미안할 짓을 할 예정이라는 뜻이다. 가만 있어 봐, 비유를 위한 예시였지만 그 십 억 다 은행에서 받은 거라면 신용등급 한번 끝내준다는 건데 그 사람 누군지 참 부럽군. 10억을 1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금리 4.5%로 빌렸을 때 다달이 얼마씩 나갈지 계산하면서 머리를 말리던 중에 배가 살짝 부글거렸다. (p.40)
마음과 달리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윽고 다시 잠들었을 때에는 오염된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피부병이 생겼고, 온몸의 살이 다 뒤집힌 채 서윤 씨 결혼식에 갔다가 청첩장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을 제한당해 옆 건물 옥상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여섯 배 줌을 당겨 예식장 내부를 엿보는 꿈을 꿨다. 깨자마자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을 뒤졌다. 내가 청첩장을 어디 뒀더라… (p.66)
털어놓고 싶은데 내 마음이 정확하게 어떤 형편인지 파악조차 힘겨운 상태로 술김에 뱉은 말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 사람 귀에 들어가다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진경 씨와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 자리에서만 들어 주길 바랐다. 쉽게 한 얘기도 아니었다. (p. 81)
거절은 왜 어려운가. 이 또한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던 탓일까. 당장 뿌리쳐도 모자랄 사람을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도 모자라 카운터 앞 카드 내기 경쟁에서 사력을 다 해 승리한 뒤 계좌의 잔액을 걱정하는 자가 된 걸 오직 부모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진짜 뮤트한 게 들킬까 봐? 아니면 얻어먹기만 한다고 내 흉볼까 봐? 잠깐,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사람들은 너만큼 너한테 관심이 없어. 신나게 떠들었다 한들 네 얘길 입에 올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 (p. 104)
정상까지 오래 걸리려나 싶을 때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여기 좀 앉아 있다가 가야지. 생각보다 높은 곳이라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감자가 벤치 밑을 발로 긁으면서 킁킁거리길래 봤더니 바람이 다 빠진 고무공이 있었다. 힘껏 던져도 발 앞에 떨어지는 고무공을 가지고 한참 놀다가 어느새 해가 졌다. 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감자의 똥까지 수확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p. 136)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은 반복되는 어느 일요일에 대한 다섯 편의 연작 소설입니다. 다소 무모한 계획과 변덕맞은 선택 속에 조금씩 달라지는 다섯 번의 하루를 사는 동안 주인공이 듣거나 하게 된 말의 진의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목차
* 괜찮으세요?
* 일부러 그랬겠어
* 팬입니다
* 혹시 저 뮤트하셨어요?
* 가만 있어 봐
책속의 문장
그렇다, 사진. 오늘의 모든 일정은 공통적으로 사진 촬영이 가장 중요하다. 계획대로 누락없이 수행한다면 최소 네 장의 사진을 건져 업데이트가 뜸했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일정인가? 말도 안 돼. 고작 사진 때문에 이걸 다 하겠다고? (p.13)
신은 없다. 아니, 어쩌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한테 왜, 무슨 가르침을 주려고. 태연하지만 조금 빠르게 걸었다. 다시 보니 삼십 초가 알려 준 곳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다들 가까이 하지 않는 곳이었고, 숨어서 이 사태를 처리하기에 제격이었다. (p. 26)
다 할 수도, 필요도 없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제 집에서 웅크리고 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던 감자가 나보다 먼저 뛰어가서 싱크대 앞에 앉았다. 빙글빙글 돌다가 그릇을 내려 놓자 사료를 한 알씩 씹어 삼킨다. 너 목욕할 때도 지났는데. 밝을 때 데리고 나가서 산책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감자에 대한 죄책감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기대출금이 십 억 정도라고 쳤을 때, 과연 그는 오십만 원 정도 더 대출 받는 것을 크게 걱정하며 주저할까? 미안하지만 늘 미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미안할 짓을 할 예정이라는 뜻이다. 가만 있어 봐, 비유를 위한 예시였지만 그 십 억 다 은행에서 받은 거라면 신용등급 한번 끝내준다는 건데 그 사람 누군지 참 부럽군. 10억을 1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금리 4.5%로 빌렸을 때 다달이 얼마씩 나갈지 계산하면서 머리를 말리던 중에 배가 살짝 부글거렸다. (p.40)
마음과 달리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윽고 다시 잠들었을 때에는 오염된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피부병이 생겼고, 온몸의 살이 다 뒤집힌 채 서윤 씨 결혼식에 갔다가 청첩장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을 제한당해 옆 건물 옥상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여섯 배 줌을 당겨 예식장 내부를 엿보는 꿈을 꿨다. 깨자마자 작은 방으로 가서 책상을 뒤졌다. 내가 청첩장을 어디 뒀더라… (p.66)
털어놓고 싶은데 내 마음이 정확하게 어떤 형편인지 파악조차 힘겨운 상태로 술김에 뱉은 말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 사람 귀에 들어가다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진경 씨와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 자리에서만 들어 주길 바랐다. 쉽게 한 얘기도 아니었다. (p. 81)
거절은 왜 어려운가. 이 또한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던 탓일까. 당장 뿌리쳐도 모자랄 사람을 고분고분 따라가는 것도 모자라 카운터 앞 카드 내기 경쟁에서 사력을 다 해 승리한 뒤 계좌의 잔액을 걱정하는 자가 된 걸 오직 부모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진짜 뮤트한 게 들킬까 봐? 아니면 얻어먹기만 한다고 내 흉볼까 봐? 잠깐,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사람들은 너만큼 너한테 관심이 없어. 신나게 떠들었다 한들 네 얘길 입에 올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 (p. 104)
정상까지 오래 걸리려나 싶을 때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여기 좀 앉아 있다가 가야지. 생각보다 높은 곳이라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감자가 벤치 밑을 발로 긁으면서 킁킁거리길래 봤더니 바람이 다 빠진 고무공이 있었다. 힘껏 던져도 발 앞에 떨어지는 고무공을 가지고 한참 놀다가 어느새 해가 졌다. 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감자의 똥까지 수확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p.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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